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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길귀신’ 곽재구가 들려주는 여행이야기 | ||
| 2013/11/25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6,948 |
![]() 길귀신의 노래 곽재구 지음 열림원·1만4000원
“나는 길들을 사랑했다. 세상의 아주 먼 곳까지 사방팔방으로, 도시와 사막과 바다와 산맥의 속으로 펼쳐진 길들의 모습은 나를 늘 설레게 했다.” 시인 곽재구(59·사진)가 <곽재구의 포구기행> <곽재구의 예술기행>에 이어 길을 주제로 한 세 번째 산문집을 내놓았다. 길 위에서 펼쳐진 여행과 인연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이기도 한 <사평역에서>에 관한 글이 우선 눈을 잡아끈다. 1981년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작품을 가리켜 시인은 “문학청년 시절의 궁핍한 삶을 비추는 구리거울”이라 표현했다. “한없이 척박하고 목마른 시간들. 희망과 절망의 경계마저 모호해지고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알 수 없는 손이 건네준 보자기 하나!”라고도 했다. 어떻게 그러한가. 그가 이 작품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 겨울이었다. 일정한 거처 없이 시 쓰는 동무들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지내던 그는 그 친구들이 모두 군에 가자 하는 수 없이 덩달아 입대하게 되었고 입영전야제에서 노래 대신 낭독한 시가 바로 <사평역에서>였다고. 그 뒤 그가 속했던 동아리 후배들은 누군가 입영하면 이 시를 낭송해 주는 전통이 생겼단다. “한 시의 태어남에 시절의 팍팍함과 연민이 함께했던 것이다.” 1979년에 제대하고 이듬해 신춘문예에 낙방한 그는 바로 그해, 1980년 5월 고향 광주에서 벌어진 사태 앞에 절망한 나머지 시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지내던 연말, 입대 전에 신세졌던 동무의 채근에 다른 몇 편 시와 함께 신문사로 보낸 작품에 <사평역에서>가 있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저 유명한 작품. “좀처럼 오지 않는 희망.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들. 눈곱이 끼고 손금이 닳아지고 희망 없이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 그들이 지닌 시간 속에 따스하고 설레는 불꽃의 춤 같은 것을 새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지난해 4월 <와온 바다>라는 시집을 낼 정도로 그는 순천만에 자리한 작은 바닷가 마을 와온(臥溫)을 아끼고 사랑한다. “따뜻하게 누워 있는 바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몸과 마음이 한없이 정직해지고 부드러워졌을 때 만날 수 있는 정결한 평온이 허름한 포구의 이름 속에 깃들어 있었다.” 어느 해 봄 와온에 들른 작가 박완서가 개펄에서 일하는 아낙들을 바라보며 “봄날의 꽃보다도 와온 바다의 개펄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시인은 아끼던 ‘비밀’을 일러준다. “와온의 바다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해넘이의 시간이 아니라 만월의 시각이다.”
최재봉 기자, 사진 열림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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