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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그대의 영혼엔 어떤 \'포도\'가 열렸습니까 | ||
2013/11/29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4,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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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곽재구(59·사진)의 새 산문집 \'길귀신의 노래\'(열림원)가 출간됐다. 이 산문집에는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첫 문장부터 알 수 있다. \'따뜻한\'이라는 형용사와 \'손편지\'라는 명사의 질감을. 그는 \'포도\'의 비유를 썼다. 달콤하고 촉촉하고 영감이 주렁주렁 이어지는 과실. 한 송이 포도와 같은 질감과 푸른빛을 꿈꾸며, 시인은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걸어온 길을 글로 옮긴다. \'길귀신\'은 그에게 시의 신(神)이며, 동시에 지금까지 자신의 여행을 지켜준 영적 존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아홉 살 때 40리를 걸어 떠났던 어떤 가출에서 \'손님\'이란 호칭을 처음 들었을 때를 시작으로, 순천과 여수 그리고 와온(臥溫) 바다에서의 인연들, 그리고 투르판, 부하라, 오쉬, 알렉산드리아, 사마르칸트, 이라클리온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그중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만난 앞 못 보는 사내를 전달하는 시인의 포도송이 한 알이 잊히지 않는다. 손끝으로 벽을 더듬어 샤워기를 찾고, 역시 손끝으로 물 온도를 재고, 양치용 소금통을 찾는 데 실패했지만 결국은 주변의 도움으로 이를 닦고 물로 입가심을 한 사내. 시인은 거리에서 그를 다시 만난다. 그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지만, 아내를 위해 그가 프리지어를 샀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라고, 그 아내 역시 지팡이와 검은 안경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 저리지만, 그 둘이 함께 중국집 우동을 먹는 풍경을 지켜볼 때의 푸근해지는 마음. 곽재구는 묻는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름다움을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서만 온다. 두 손으로 안을 때 기분 좋아지는 포도처럼,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문장들이 소담하다. _조선일보 기사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8/2013112804451.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