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이달의 책에 <비>(마르탱 파주 지음/ 이상해 옮김)가 선정되었습니다.
심사평 |
산문의 매력은 문장의 힘이다. 문장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새로움에서 온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주변에는 많은 대상들이 존재한다. 날씨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눈과 비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런데 유독 우리는 눈에만 풍성한 가치를 부여하고 비는 다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물론 비와 사랑을 연결시킨 고전영화를 비롯해서 좋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마나 홍수, 수해, 산성비, 뭐 그런 것들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비’와 연관지어 떠올리는 것들이다.
프랑스의 젊은 작가 마르탱 파주가 글을 쓰고 발레리 해밀이라는 화가가 삽화를 그린 책 『비』는 이런 비에 관한 우리들의 생각을 바꿔주는 책이다. 아파트가 일상화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아니 말을 바꿔 우리 사회가 산업화를 이루기 이전의 세상에서, 비는 반가운 것이었다. 비단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비는 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청량제였으며 식수의 원천이었고, 개구쟁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친구였다. 툇마루에 나앉아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은 기억도 누구에게나 있을 테고, 그렇게 떨어지는 빗물이 마당에 떨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일사분란한 작은 구멍을 본 기억도 있을 것이다.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적도 있을 것이고, 행여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가 들이칠까봐 좁은 우산으로 상대방을 가려주었던 기억도 있을 것이고, 비를 맞으며 공을 차면서 그 시원함을 즐겼던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많던 기억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마르탱 파주는 이 책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비에 관한 많은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은 아니고, ‘비’에 대해 명상한다. ‘비’가 명상의 대상일 수 있다는 발상부터 참신하다. 그는 말한다. 산성비가 오면 어떠냐고. 복고풍의 중절모가 일상화될테니 그것은 그것대로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과거와 연관 지을 것이라고. 세상이 물로 되어 있고 우리 몸도 물로 되어 있으므로, 비를 통해 우리는 세계와 연관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비단 여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는 비와 태양을 대비시켜 태양은 제국의 폭력이며, 비는 가난한 자들, 없는 자들의 비유라고 말한다. 비가 잘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 전쟁이 더 많이 벌어지며, 비가 사랑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인류학적 보고서도 참조한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비는 발견된 것이다.
비가 ‘자연’이 아니라 발견된 것으로 보는 그의 시선은 일상 또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들이며, 그럴 때 우리들의 존재가 한없이 고양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비와 음악의 상관성, 시간의 구체로서의 비의 존재, 구름의 양수가 터져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는 비의 생생력(生生力)을 그는 말한다. 이쯤 되면 우리는 비와 구름, 달, 여성, 물, 바다, 생명이 맺고 있는 순환의 고리에 대해서도 인식하게 되고 더 나아가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신화적 사고의 단편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비를 잊고 살았던 것일까. 바빠서 그렇다는 것도 필자의 대답 가운데 하나다. 한번쯤 비를 긋기 위해 남의 집 처마 밑이나 다리 밑 혹은 버스정류장 아래로 숨어서 물끄러미 비를 바라보면서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본 사람들이라면, 자신들의 삶이 비로 인해 얼마나 풍부해지고 기억 또한 풍부해졌는가를 쉽게 수긍할 것이다. 비 온 뒤의 땅냄새는 또 어떤가. 길 위에 축제처럼 나오던 많은 지렁이들과 달팽이들은 또 어떤가.
장마철이다. 수해 예방도 중요하지만, 비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하늘에서 떨어져 우리와 직접 교섭하고자 하는 비의 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도 말이다. 각도를 달리하면 일상이 다르게 보인다. 비단 비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눈은 물론이려니와 바람과 안개, 뙤약볕도 모두 그럴 것이다. 그래도 비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숱한 형태의 우산이라든가 우비에 관한 기억까지를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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