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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시인은 아스팔트에 있지 않다
2013/12/10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4,151



길에 서지 않으면 밥을 얻을 수도, 사랑을 만날 수도, 새로 핀 꽃의 향기를 맡을 수도 없다. 그래서 시인은 무작정 길을 나선다. 길에는 시인을 반기는 길귀신이 있다. 햇살, 바람, 흙냄새이다. 시인에게 살아있음이란 좋은 햇살 등에 지고, 바람에 실린 흙냄새를 맡으며, 터벅터벅 걷는 일이다. 흙은 우리네 삶의 시원이자 종착지, 따스하고 가벼운 생의 진동을 전한다.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가 산문집 \\\'길귀신의 노래\\\'로 돌아왔다. 이전의 산문집 \\\'포구기행\\\'에서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 경상도, 강원도의 포구들을 돌며 풍경과 사람, 삶의 따스함을 전했던 시인이 이번에는 세상 도처의 사람들을 만나며 얻게 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들을 들려준다.

863번국도 곁에 따뜻하게 누워있는 바다를 가진 와온(臥溫) 포구의 가로등은 18개, 계단은 10개다. 불 꺼진 16번 가로등과 그 아래 계단, 계단 밑의 바다가 바로 시인의 것이다. 물론 누구나 와온에 가면 자기만의 가로등과 계단과 바다를 차지할 수 있다. 남도의 그 바다는 동해와 달라 10분 만 파도소리를 들으면 스르르 잠에 빠지는 수면제다.

시인은 마음의 언덕인 와온에 터를 잡고 863번 국도를 터벅터벅 오르고 내린다. 달천과 선학이 있고 쫑포가 있다. 시인은 \\\'쫑포의 바다가 있는 한 당신의 인생은 쫑나지 않는다\\\' 하고 그곳의 어르신은 굳이 종포(鍾浦)라고 우기지만, 시인이 보기에 산다는 것은 종이나 쫑이나 매 한가지다.

시인은 시공의 축지법도 쓴다. 와온에 있던 그는 어느 순간 유년의 담임선생님과 프리지어 꽃을 사랑하는 맹인부부를 만나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를 누빈다. 인도에서 그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인사말을 만난다. 그때까지 그가 알고 있던 두 번째는 나마스테(나를 사랑하는 내 영혼의 신이 당신의 영혼 또한 사랑하기를)였다. 그런데 그보다 아름다운 말 \\\'자이그루\\\'가 있었다. 이렇게 멋진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의 영혼이 어찌 맑지 않겠느냐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그럼 세상 제일의 인사는 무엇일까? 식당에 들어와 뻥튀기를 파는 할머니가 마음을 다해 눈빛을 열고 건네는 \\\'복 받으시요\\\'다.

우리는 가끔 시인이 되고 싶다. 그러나 아무나 될 수 없다. 시인은 아스팔트에 있지 않기 때문, 그러므로 그에게 아파트나 차의 크기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래선지 맑은 영혼이 아닌데 덜컥 이 책을 읽다가는 \\\'바쁜 세상에 길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며 내팽개칠 수도 있다\\\'고 사용설명서에 적혀있다. 

출처: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3120509425851709&outlin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