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 파랑새 톡 왓스쿨 아이콘 카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Home | 독자서비스 | 공지 및 소식
40 [책과 삶]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그래서 쉬이 부서지지
2013/05/20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6,712



▲아버지학교
이정록 지음 | 열림원 | 128쪽 | 1만원

이정록 시인의 시집 <아버지학교>는 지난해 가을에 나온 <어머니학교>의 후속시집이다. 두 시집의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어머니와 한 몸이 되어 잠에서 깨었다. 채 어머니로 변하지 않은 오른손이 쏟아지는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 적’었으며, ‘지병이 아버지에게 가르쳐준 지혜의 약봉지뿐만 아니라, 잠들지 않는 욕망과 조급한 훈계도 담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두 시집에 실린 시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지난했던 삶이고, 말씀이고, 시다. 이정록의 두 시집 <어머니학교>와 <아버지학교>는 부부가 일심동체인 것처럼 한 권의 시집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어머니학교>에서 나오는 어머니의 ‘고무신울음’이 <아버지학교>에서 아버지의 ‘장화울음’으로 변주되는 것을 봐도 그렇다.

‘너무 힘들어서/ 물가에 고무신 벗어놓고/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는데, 눈물이 마르면서/ 고무신 안쪽에 자동차바퀴가 보이더구나./ 그 껌정고무신이 타이어표였거든./ 바퀴 안에 진짜라고 써 있더구나./ 애들 놔두고 진짜 죽으려고?/ …/ 저수지 둑을 벗어나 집으로 오는데,/ 신발 속에서 진짜, 진짜, 울먹이는 소리가/ 종아리를 타고 올라오더구나.’(<어머니학교> ‘소설’에서)

\"\"
‘웃음과 울음은 같은 우씨여서/ 한 얼굴, 한 광대뼈 안에서/ 어우렁더우렁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의 한자 이름도 우씨여서/ 눈망울이 젖을 때 많아졌습니다./ 소 꽁무니를 따라가는/ 아버지의 장화가 훌쩍거렸습니다.’(<아버지학교> ‘장화울음’에서)

<아버지학교>는 쉰여섯, 입춘에 지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짧은 생이 아들인 작가에게 건네준 ‘지혜의 약봉지’와 ‘잠들지 않는 욕망, 조급한 훈계’를 시 56편에 담았다. <어머니학교>와는 달리 <아버지학교>에는 한 사내로, 지아비로, 가장으로 살며 체득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작가는 시집을 여섯 개의 장으로 나누며 ‘가슴은 식어야 넓어지는겨’ ‘똥구덩이에 빠져도 기죽지 마라’ ‘큰 걸음으로 건너가라’ ‘얼음지붕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얼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제목을 붙였다.

‘밤송이를 털면 땅바닥이 가시밭이 되지. … 그것도 모르고 고개 쳐들고 눈물 짜는 사이, 누군가가 알밤 다 주워 가지. … 세상 더럽다고 욕지거리하다가 시든 밤꽃처럼 끝장 보는 거여. 알밤은 고개 푹 숙이고 가시밭에서 얻는 거여.’(‘생의 알밤’에서) ‘담을 쌓지 마라./ 누군가는 그 담장 위에 피 묻은 병조각을 꼽는다.’(‘담’에서).

<아버지학교>에 실린 시는 <어머니학교>와는 달리 아버지의 짧았던 생에 대한 시인의 회한이 짙게 배어 있다.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연탄’에서)와 ‘소주잔이 맥주잔으로 커졌습니다./ 안주가 간장과 소금으로 바뀌었습니다./ … 뼈를 빻자 소금이 한 단지나 나왔습니다.’(‘구운 소금’에서) 같은 시들이 그것이다.

이정록의 시는 말을 걸듯이 다가온다. 그것은 두 권의 시집에 실린 그의 시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도 좋아하는 예쁜 여자를 따라다니다가 … 시를 쓰기 시작’한 작가가 시는 ‘가장 예쁘고 가장 아름다운 연인’인 독자가 ‘이해하는 언어, 진심이 담긴 영혼의 말을 참신하게 담아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